출생
1948년 2월 5일

고향 출생지
스웨덴
신체
178cm

데뷔년도
1966년 'Torsby IF' 입단

주요 경력
2019.~ 제17회 AFC 아시안컵 필리핀 국가대표팀 감독
수상
2000. 이탈리아리그 우승

잉글랜드 대표팀 첫 외국인 사령탑 에릭손 감독 별세
-2024. 8. 26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첫 외국인 사령탑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26일 별세했다.향년 76세.


영국 가디언은 에릭손 감독이 월요일인 이날 아침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숨을 거뒀다고 전했답니다.

에릭손 감독은 지난 1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는 남은 시간이 1년 정도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에릭손 감독은 1977년 스웨덴 구단 데게르포르스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19년 필리핀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날 때까지 40여년 동안이나 현역 감독으로 활약했다. 이 기간 그가 지휘봉을 2년 넘게 놓았던 적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는 2001년 1월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3회 연속으로 8강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잇따라 8강에 올랐고, 유로 2004(2004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도 8강의 성적을 냈다.

에릭손 감독은 프로 무대에서도 굵직한 성과를 냈답니다.

두 번째로 지휘한 클럽인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1981-1982시즌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을 지휘하며 유럽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포르투갈 명문 벤피카를 이끌고 리그 우승 3차례, 유러피언컵 준우승, UEFA컵 준우승을 일궜다.

1984년에는 이탈리아 AS로마 지휘봉을 잡으며 빅리그에 데뷔했다. 로마와 삼프도리아, 라치오를 차례로 이끌면서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 세리에A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등 좋은 성적을 냈다.

말년에는 아시아 무대에서 감독으로 6년 활동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 6일 결혼
-2019. 4. 9

‘한판승의 사나이’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최민호는 지난 6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비(非)연예인 연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예식은 연예인이 아닌 신부를 배려해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로 치러졌다.

이날 예식의 주례는 대한유도회 김정행 명예회장이 맡았고, 사회는 개그맨 김형인이 진행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축가는 최민호의 오랜 친구가 불러 앞날을 축복했다.

최민호 커플의 결혼준비를 담당한 웨딩업체 측은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정말로 정말 보기 좋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답니다.

두 사람은 용인대 동문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첫 눈에 반해 사랑을 키워왔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깊은 배려심에 반해 결혼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민호는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과 사랑으로 드디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많은 축하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답니다.

한편 최민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한판승으로 남자유도 60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판승의 사나이’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현재는 유도 실업팀을 창단해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건 유도가 아니다"…이원희·최민호가 소환된 까닭
-2024. 7. 30

유도 여자 57㎏급 허미미(21·경북체육회)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과정을 지켜본 유도팬들 대다수의 발언이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와의 연장 혈투는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 이미 지도 2개씩을 받은 두 선수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이어 나갔다. 지도 3개를 받으면 그대로 반칙패다. 연장전 시작 2분 15초께 두 선수는 소매를 하나씩 맞붙잡고 치열한 기 싸움을 펼쳤다. 먼저 공격에 들어간 쪽은 허미미였다.

허미미는 오른쪽 어깨를 집어넣어 메치기를 시도했고 이것이 먹히지 않자 곧바로 일어나 반대쪽 메치기를 시도했다. 수세를 취하던 데구치는 뒤쪽으로 이동하며 허미미의 공격을 피했답니다.

심판의 판단은 허미미의 '위장 공격'이었다. 위장 공격이란 실제 공격할 의도가 없으면서도 그런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선수가 그 상황을 면피하고자 '방어를 위한 공격'을 했을 때 위장 공격 지도를 준다.


허미미를 누른 데구치는 시상식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데구치는 지도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운을 뗐습니다.

데구치는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지도에 대해 할 말은 없는 것이다"면서도 "더 나은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바꿔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답니다.

국내 유도팬들은 위장 공격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 경기 내내 잡기 싸움이나 벌이고, 툭 하면 심판만 처다보는 현 유도 상황에 "이 건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실망한 반응이 역력한 분위기다. 각종 스포츠 커뮤니티에서는 '올(All) 한판승'으로 시원시원하게 금메달을 따냈던 이원희(2004년 아테네올림픽), 최민호(2008 베이징올림픽)의 하일라이트 동영상을 보며 "이런 게 진짜 유도"라고 아쉬워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답니다.

우상혁 부친 "국민께 기쁨을 준 아들, 자랑스럽고 고맙다
-2022. 7. 19. 16:35

‘스마일 점퍼’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 부친 우경원씨(60)는 세계육상선수권에서 한국 최초로 은메달을 따낸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우씨는 19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웃는 표정으로 대회를 정말로 잘 마쳤고 한국 최초로 은메달도 따냈다”며 “이래저래 어려운 시기에 국민에게 기쁨을 드린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우씨가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씨는 “상혁이가 컨디션이 좋았는데 (금메달은)아직 때가 아닌 모양”이라며 “다음에 다시 도전해서 더 좋은 기록을 올리면 된다”며 담담하게 말했답니다.


우상혁은 어릴 때 태권도, 택견을 했다. 덕분에 텀블링, 물구나무서기 등을 잘 했다. 우상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다. 우씨는 “누구나 본인이 하고 싶을 걸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육상도 상혁이가 원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씨는 “상혁이가 어린 나이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부를 볼 것, 힘들고 투정 부리지 않을 것, 성실하게 훈련할 것 등 3가지를 약속하면서 육상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우상혁은 소위 ‘깡’이 셌고 승부근성도 강했다. 우씨는 “어릴 때부터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이틀, 사흘씩 싸워서 승부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며 “육상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주먹 세계에 있었을 것”이라고 웃었습니다.

높이뛰기는 다른 종목보다 더 큰 용기와 대담성이 필요하다. 뒤로 돌아서 바닥에 떨어져야 하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가 되기 힘들다. 우씨는 “상혁이는 배면뛰기를 2~3일 만에 배울 정도로 두려움이 없었다”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우씨는 어릴 때부터 우상혁 몸관리에 적극적이었다. 밥과 음식이 ‘보약’이었다. 우씨는 “어릴 때부터 소고기, 장어 등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며 “운동 선수는 운동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따로 보약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우씨는 1m67, 어머니 송민선씨(62)는 1m55로 큰 편이 아니다. 우씨는 “상혁이가 정말로 중학교 시절 20㎝ 넘게 컸다”며 “모든 걸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15년 동안 아들이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 동행했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답니다.

우상혁은 오른발이 왼발보다 1㎝가 짧다. 8세 때 택시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오른발을 밟힌 후유증이다. 우씨는 “피부 절반 정도를 드러낸 뒤 정말 많이 꿰맸다”며 “그때 영향으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덜 자랐다”고 말했다. 양발 크기가 다르면 도움닫기, 균형유지, 점프 등에 불리하다. 그런 약점을 우상혁은 끊질긴 노력과 긍정 마인드로 극복했다. 우씨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해 최근 체중 13㎏을 뺐다”며 “키 1m88에 65~66㎏을 유지한다는 것부터 정신적으로 강해야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씨는 지금 오륜기 모양 금목걸이를 차고 있다. 우상혁은 육상을 시작하면서 올림픽 메달이 꿈이라고 말해왔고 그걸 기억하기 위해 아버지가 오륜기 목걸이를 선물로 만들어줬다. 우씨는 “상혁이가 불편하다며 목걸이를 되돌려줬고 내가 10년 넘게 차고 있다”며 “아들은 ‘열정과 야망을 담겠다’며 2016 리우올림픽에 다녀온 뒤 등 쪽에 오륜 문신을 정말로 새겼다”고 말했다. 우상혁이 어릴 때부터 가진 변함없는 꿈은 올림픽 메달이다. 우씨는 “2024년 파리올림픽이 절정의 기량으로 메달에 도전할 시기”라고 말했답니다.

우상혁은 인스타그램에 ‘WOO_238’이라고 적어놨다. 자기 신장에 50㎝을 더한 수치다. 높이뛰기 선수에게 성역으로 여겨지는 높이다. 우상혁의 우상은 스테판 홀름(스웨덴)이다. 홀름은 1m81로 단신이지만 2m40을 뛰었습니다.

우씨는 “어릴 때부터 홀름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며 “상혁이도 2m38을 넘는다면 그 이상도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혁은 3형제 중 막내다. 첫째 형은 아직 미혼이고 둘째 형이 오는 8월 결혼한다. 우씨는 “상혁이가 파리올림픽이면 우리 나이로 거의 서른이 된다”며 “지금 상혁이는 높이뛰기 선수로 대성하는데 모든 걸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상혁이가 국민에게 자신감과 더 기쁨을 주는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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